세상의 고민을 다 짊어진 것처럼
자신의 세상을 짊어졌다.
(forever)
한번도 본 적없는 글자에 떨어 고뇌한다.
마비된 머리에 이상한 단어가 맴돈다.
잠을 자는 것이 도주의 수단이리라.
(4ever)
포장지는 예뻐서 조심히 뜯어 보관해놓자.
상자를 열때는 활짝 열어 희망까지 나오게하는 게 좋을까?
시한폭탄을 넘기듯 빨리 손 떼는게 좋을까?
(그리고 사진)
피프티-피프티-
바보 같지만 한 때 이렇게 생각해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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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아이들이 부모님의 사랑을 거의 흘려보낸다. 짜증 낸다. 부모님들은 어떤 마음인 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아파하실 거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사랑을 부어 넣는다. 왜?
그렇다. 사실 부모님들은 매우 이기적인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부모님들은 자신의 행복만을 바라고 있다.
아이들이 그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이던 간에 그 사랑을 계속해서 부어넣어 자기만족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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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어린 시절 나의 결론 이었다.
하지만 최근와서는.. 거기에는 뒷 이야기가 있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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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머리가 커진 아이들은 반항하기 시작하고 부모님은 그 반항에 상처입고 상처입어 끝에는 '적당히 사랑을 넣는 법'을 배운다.
세상에 어느정도 내놓아서 시련을 겪게 만들고, 그로서 스스로 경험을 얻게 만든다.
사실 지금까지 해온 잔소리는 그 경험을 간접적으로 시켜서 실제로 겪는 일을 없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부모님의 마음은 매우 쓰라리다. 괴롭다.
자기 자식이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 어디 기뻐하는 부모가 있으랴.
단, 이걸로 다음에 더 큰 위기를 깨쳐나갈 힘을 얻을 것을 알고 있기에 내버려두는것이다.
아니, 지켜보고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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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도... 여기에도 뒷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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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일반적으로 있지만, 그 어느 누구도 해주지 않던 이야기...
이걸 빨리 눈치 챈 자식은... 후에라도 부모님께 효도 할 것이지만...
끝내 눈치 채지못한 우둔한 자식도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이런 이야기가 숟하게 있지 않은가.
「부모님 살아 계실 적 봉양하여라」
스토리가 있는 글. 즉 이야기를 쓴다고 해보자.
이야기를 쓰는 데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번째는, 작가가 스토리를 만든다.
그리고 캐릭터를 만들어 집어 넣는다.
이 경우 캐릭터 특히 주인공은 이리저리 잘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즉 특별한 성격을 가지지 못하고 이리 저리 잘 휘둘린다. 왜냐면 작가의 이야기에 맞춰서 흘러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래서는 캐릭터의 성격이 죽어서 재미가 없어진다.
결국 작가의 역량에 맞춰서 스토리가 변하고 만다.
두번째는, 캐릭터가 스토리를 만든다.
작가가 할 일은 그저 개성이 강한 캐릭터들을 만들어 내는일.
그런 캐릭터가 네, 다섯만 있으면, 작가의 머리속에서 그 캐릭터들이 알아서 스토리를 만들어준다.
이는 스토리는 전혀 어색해지지 않지만, 작가의 의도대로 스토리를 이끌어가기가 힘들어진다.
이제 여기서 본론인데,
잠이 오니까 오늘은 여기까지.